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표지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똑똑하지만 불안한 대한민국 교육의 두 얼굴

  • 저자 권재원
  • 분야 인문 | 교육
  • 발행일 2015-06-15
  • 판형 152*225mm
  • 쪽수 272
  • ISBN 9788994655383
15,000원

도서 소개

‘1등’ ‘핀란드’ ‘성취도’만 쫓던 우리가 그동안 PISA에서 보지 못한 것

OECD 국제 학생평가 보고서 최초 분석!


전 세계 70여 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 수리, 과학 영역과 문제해결력을 평가하고 방대한 교육 자료를 수집하는 OECD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국제 학업성취도 1등” “학습 동기 최하위” 같은 말은 익숙해도 그 말 속에 담긴 PISA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언론과 교육계는 이제껏 PISA 보고서를 오로지 성취도 지표로만 활용해 왔다. 하지만 성취도와 순위는 전체 보고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교육 개혁이 말뿐인 슬로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분석이 필요하다. 교육학자, 사회학자이자 현직 교사인 저자는 특기인 사회과학 조사방법을 동원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수천 쪽에 이르는 PISA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진단한다. 장밋빛 희망도, 무책임한 절망도 아닌 객관적 자료와 논리적 분석을 통해 내다본 교육 개혁의 길은 어떤 모습일까?

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은 가장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평균 이하의 성인들이 되었는가?

2000년부터 3년에 한 번씩, 교육계 안팎은 술렁인다. OECD 국제 학생평가(PISA) 때문이다. 하지만 PISA에서 다섯 번이나 최상위권을 지킨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행하기까지 하다.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에도 학생, 학부모, 교사 중 아무도 칭찬받지 못하며 모두가 교육 불가능을 말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세상이 변했다…그런데 교육은?

경제기구인 OECD는 12년 전 PISA라는 이름의 학생평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갑자기 교육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전 세계의 15세 학생들을 평가하겠다며 내세운 명분은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었길래 교육에는 관심도 없던 OECD가 교육 개혁의 전면에 나선 것일까?

변화의 기운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감돌았다. 똑같은 것을 배우고, 똑같은 방식으로 시험을 봐서, 똑같이 말 잘 듣는 표준 노동자들을 대량생산하던 근대 공교육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추었다는 청년 세대가 쏟아져 나와도, 기업들은 인재가 없다며 불평한다.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 되라는 산업사회의 주문은 구글과 애플로 대표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이제 배운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배운 것보다 배울 수 있는지 여부, 앞으로 새로운 것을 얼마나 잘 배울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교육 전문가, 반쪽짜리 교육의 이면을 드러내다

PISA가 시작된 이래로 줄곧 최상위권을 지켜온 대한민국, 지식정보사회를 이끌 우수한 인재들도 그만큼 많을까? 교육학 박사로 20년 넘게 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쳐 온 저자는 PISA에서 거둔 대한민국의 높은 성취가 반쪽짜리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성적은 최하위권이 적고 중간층이 두터워서지 결코 ‘인재’라고 부를 만한 최상위권이 많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OECD의 조사 결과는 더 심각하다. 평균 이하의 읽기 능력과 수리 능력, 청년과 노인층의 격차는 세계 최대, 학교를 나서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지식, 과중한 노동과 그로 인해 떨어지는 생산성, 평생학습이 불가능한 사회. 이것이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서 최고임을 광고했던 대한민국 공교육의 결과라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쪽짜리 성적에 취해 교육 개혁과 사회 개혁의 기회를 번번이 놓친 탓이다.

저자는 PISA 12년의 방대한 자료에서 그동안 제대로 조명조차 되지 못했던 교육의 나머지 반쪽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알기 쉽게 추려내어 조목조목 짚어준다. 그러면서 교사의 자질과 학생의 행복도, 빈부 격차와 교육 격차 등 성취 이면의 지표에 우리나라 교육 개혁의 열쇠가 있다고 말한다. 점수만으로는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의 교육 개혁은 점수가 보여주지 못했던 교육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되겠냐는 질문이 어떤 ‘직업’을 갖겠냐는 뜻으로 이해되는 사회. 심지어 그 직업을 가져야 할 이유가 단지 생존 때문인 사회. 그 생존을 위해 오늘의 삶을 기약도 없이 유예하고, 미래를 저당 잡혀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성취도만을 좇는 교육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선배격인 지금의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입시에서의 좋은 성적만으로 돌파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왜 공부하는지, 무엇을 공부하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 모르는 채 다만 뒤처질까 두려워서 하는 공부는 무의미한 학습 노동일 뿐이다. 학습시간 최대, 학교에서의 행복도 최하위를 기록 중인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보여주는 1위라는 순위는 어쩌면 불안과 스트레스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PISA에서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학교를 위해,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무엇을 폐기하고 무엇을 발전시켜야 하는가? 여섯 번째 PISA인 PISA 2015와 세계 교육의 큰 흐름을 읽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안목은 무엇일까?



지은이 소개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방송통신대, 상명대 등에서 사회조사방법론을 강의했으며 20년 넘게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미디어 오늘〉 〈ㅍㅍㅅㅅ〉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교육칼럼니스트이자 계간 《우리교육》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서울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팀에서 활동했으며 청소년 교양과 교육 개혁에 관심을 갖고 다수의 책을 펴냈다. 지은 책으로 《학교라는 괴물》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통계학》 《학교에서의 청소년 인권》, 공저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학교에서 연극하자》 《논쟁하는 경제교과서》 등이 있다.

추천글

《학교라는 괴물》의 저자 권재원이 또 한 권의 독특한 책을 펴냈다. PISA, 즉 ‘OECD 국제 학생평가’라는 틀을 통해 본 우리 교육의 민낯! 지금까지 우리 교육계는 양극단으로 나뉘어 PISA가 말해주는 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언제까지 높은 성적에 취해 우쭐대기만 할 것인가? 혹은 우리 교육이 그렇게 자학할 만큼 형편없기만 한 것인가? 저자는 지금까지 언론과 여론이 끌고 가는 대로만 평가하고 판단해 온 이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승부를 건다. 그 논리는 학문적 치밀성으로 설득력을 갖추었고, 일반 독자들도 알기 쉽게 쓰인 덕분에 잘 읽히기까지 한다. 내용은 시사적이나 오랜 성찰과 숙고로 쓰인 글에서 숙성된 발효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교육 현장은 물론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소중한 통찰력을 가져다줄 책이다.

- 송순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전 서울시교육연수원장)


권재원, 그는 늘 경건한 교육 담론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그가 이번에는 PISA를 통해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우리가 PISA로부터 배워야 할 점을 분명히 밝힘과 동시에 자본의 논리에 따른 PISA 자체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들을 우리 교육의 미래와 연결 짓는 집요함이 멋지다. 고정관념이 많은 교육계, 특히 교육 현상을 평가라는 잣대로 보는 데 익숙한 분들의 시야를 확 트이게 해 줄 것 같다.

-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한때 우리 교육계에는 핀란드 열풍이 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PISA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을 혹사시키지 않고도 높은 성취를 보인 핀란드는 자연스럽게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학습효율성’이라는 도식이 만들어졌다. 적은 시간 공부하여 높은 효과를 내는 핀란드식 공부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권재원은 이 책에서 그러한 통념을 차분하게 되짚는다.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방대한 분량의 PISA 보고서를 꼼꼼하게 분석하여 단순화와 왜곡 일변도였던 기존의 해석에 일침을 놓고 있다. 특히 여러 변인들을 교차하며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을 시도한 점,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학업성취에 대한 분석, 성인 문해력에 대한 비교분석에서 저자의 특기인 사회조사연구방법이 빛을 발한다. 그동안 PISA를 말하고 다닌 사람들은 이 책을 꼭 봐야 한다.

-함영기 (서울시교육연수원 교육연구관)

차례

프롤로그|우리는 왜 PISA에 열광하는가?


1 PISA를 말하다

PISA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다?

만 15세, 자본으로서의 인간

패러다임의 전환 ? 자본에서 지식으로


2 PISA를 들여다보다

무엇을 평가하는가? - 21세기의 핵심역량

어떻게 평가하는가? - PISA 미리보기


3 PISA를 통해 본 대한민국 교육

그래서, 몇 등이야?

상위권을 판쓸이한 동아시아

PISA 12년, 무엇이 바뀌었나?

왜 순위가 높은데도 인재는 부족할까?


4 PISA를 읽는 또 다른 코드

교육 격차의 다양한 양상들

학생을 사랑하지만 학교에 지친 교사들

가장 똑똑하지만 가장 불행한 아이들

성취도에 관한 오해


5 PISA보다 PIAAC이 문제다

평균 이하의 대한민국 성인

학습이 불가능한 사회


6 PISA로부터 배울 것

다시, 제대로 보는 대한민국 교육의 자리

PISA의 교훈과는 거꾸로 가는 교육정책

넘치는 것을 버리고 부족한 것을 채우자

혁신학교가 가야 할 길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성인, 학교가 아니라 사회다


에필로그|PISA 순위가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본문 중에서

학생(주로 학부모) 입장에서는 세금을 냈으니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교육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부모(주로 중산층)가 의무교육에 바라는 것은 자녀가 취업에 유리한 혹은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신(자녀)이 사회에 나갔을 때 많은 몸값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스펙을 갖춰 달라는 요구로 귀결된다. 자녀에게 값비싼 노동력을 장착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더 높은 가격을 가진 노동력으로 생산되기를,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입시에서 높은 성적을 올리기를 희망한다.

반면 인간자본론 입장에서 기업과 자본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어른이 되면 일 잘할 학생을 길러달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인간자본은 결국 노동력이다. 그들은 막대한 세금을 낸 만큼 자신들을 위해 더 높은 생산성을 보여줄 양질의 노동력이 공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특히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세금의 상당 부분을 기업 혹은 기업가와 배당소득자(자본가)들이 내기 마련이다. 그들은 막대한 세금을 낸 만큼 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생산요소가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국가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기업이나 자본가에게 의무교육이란 가격 대비 높은 효율의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한 거래다. 따라서 이 노동력은 성능이 우수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량으로 생산되어 가격은 낮아야 한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 바라본 의무교육은 세금을 낸 것 이상으로 쓸 만한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사회에 공급되는 것이다.

결국 어느 측면에서나 교육에서의 인간자본론은 노동력으로 귀결된다. 지난 20년 사이 인간자본론의 관점은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쳤다. 교육을 위해 납부한 세금은 공적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노동력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1 PISA를 말하다」 중에서


동아시아의 경우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인재 풀은 그리 풍부하지 않은 반면, 소비자의 자격에 미달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이렇게 중위권이 두터운 분포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균점수와 순위를 높인 것이다. (...) 우리는PISA 결과를 보고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훨씬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미국보다 학습 부진아가 훨씬 적어서 전체 평균이 높은 것일 뿐, 최상위권 학생의 비율은 미국이 우리보다 5%나 많다. 인구를 감안하면 결국 지식정보사회의 인재가 미국에 가장 많이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PISA 지표만 가지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는 어째서 공부 못하는 미국이 계속 지식정보의 혁신을 주도하고 공부 잘하는 동아시아는 그 지식정보 상품의 최대 소비자로만 머무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 수도 있다.

-「3 PISA를 통해 본 대한민국 교육」 중에서


우리나라는 85%의 학부모가 자녀의 대학 졸업을 원하지만 60%만이 전문직을 기대한다. 반면 홍콩은 80%의 학부모가 자녀가 전문직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60%만이 자녀의 대학 졸업을 기대한다. 한편 독일의 경우 50% 정도의 학부모가 자녀가 전문직이기를 기대하지만 35%만이 대학 졸업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대졸자가 많은 반면 그를 수용할 전문직 일자리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홍콩이나 독일은 그 반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학부모들의 인식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전문직이 되기는커녕, 대학을 졸업해도 전문직 근처에도 못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 홍콩이나 독일 학부모들이 “내 아이가 전문직이 되고자 한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겠지”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꼭 전문직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겠지”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부모의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의 극심한 임금 격차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졸 전문직·관리직 노동자는 우리보다 국민소득이두 배 높은 일본, 싱가포르의 전문직과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반면 그 나머지 일자리는 갈수록 열악한 보수와 근로 조건을 감당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행사하는 성취압력은 자녀의 장래에 대한 포부와 기대보다는 공포와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다. 부모의 성취 압력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혹은 거기까진 아니지만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 죽어라 공부해 적어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라고 얘기하는 것이 사춘기 청소년에게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4 PISA를 읽는 또 다른 코드」 중에서


문제는 우리나라다.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인 273점을 득점하는 데 그쳤다. 문자 그대로 딱 중간이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비회원국까지 포함해도 PISA에서 한 번도 5위권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우리나라가 성인 평가에서는 딱 중간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평균은 최하등급을 겨우 면한 2등급이다. 웹 탐색을 통해 인터넷 문서를 읽을 수 있고, 둘 이상의 정보를 비교·대조하는 정도가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인 것이다. 이는 주어진 자료들을 분석하여 논리적 추론까지 가능한 일본 성인들의 평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주어진 자료를 이해하는 정도까지가 고작이지만 일본 성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토론까지 가능한 수준인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민주시민성과도 직결되는 중대한 차이다. (...) 그런데 25세 이상 인구 중에서 55세 이상의 노령층 인구만 따로 떼어 조사한 결과는 더욱 놀랍다. 우리나라 55세 이상 노령층의 문해력 평균은 244점에 불과하다. 이 244점이라는 점수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냐 하면 글을 성찰적으로 읽을 수 없는, 이를테면 자기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글을 읽고도 그게 자기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수준이다. 반면 대부분의 OECD 국가는 노인과 젊은이간의 격차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오차범위 정도였다. 이렇게 아예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봐야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

-「5 학생보다 성인이 문제다」 중에서


학생들은 공부를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은 흔히 이런 저런 직업으로 표현되는 장래희망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세상을 바라며, 그 세상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컨대 합리적이고 냉정한 세상을 바라며, 그 세상에서 철저히 능력으로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움켜 쥘 것인가, 아니면 따스한 사회에서 소박하지만 화목하게 안빈낙도하며 살 것인가, 혹은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약자들을 돕는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창조적인 일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등을 다각도로 성찰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런 성찰이 매우 부족하며 심지어 부모는 학생보다 더 부족하고 편협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10여 년 전에는 장래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협소해져서 공무원, 교사, 공사 직원 등 몇 개 안되는 직업군으로 그 폭이 더욱 좁아졌다.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어떤 ‘직업’을 갖겠다고 대답하며, 그 직업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그저 잘 먹고 잘 살거나, 안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단지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공공에 대한 봉사심 때문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월급이나 받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이런 하찮은 목적을 위해 투입해야 하는 학습 노동의 양이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더구나 이 엄청난 학습량은 다만 그 직업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할 시험을 위한 것일 뿐, 그 직업에서 의미 있게 사용되리라고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6 PISA로부터 배울 것」 중에서


PISA나 DeSeCo에서는 어떻게 인권이나 문화적 다양성처럼 대단히 중요한 가치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나? 환경 감수성 역시 경제적 필요 때문에 선택과목으로 잠시 언급되었을 뿐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았다. 이는 결국 PISA의 궁극적인 목적이 철저히 지식노동자에게 필요한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인권과 같이 생산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그러나 대단히 귀중한 가치는 그만 뒤로 밀려나거나 삭제되고 말았다. (...) 학교 교육이 PISA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학생과 교육자들이 공교육을 문제투성이라고 느끼고, PISA에서 우리보다 형편없는 성과를 보여준 나라로 교육 이민을 감행하는 이유가 단지 조기교육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PISA가 평가하지 못하는 교육의 다른 절반의 영역에서 실패하고 있고, 결국 학생들의 성품과 행복을 해치고 있다는 일종의 방증이다.

-「에필로그」 중에서